'귀네슈'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3.25 한국축구 사랑한 외국인들 by 엔젤로그 (1)
  2. 2010.12.06 FC서울의 우승후 가장 생각나는 귀네슈 감독 by 엔젤로그 (3)
  3. 2010.01.20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의 유럽 정착.. 그 이유는.?? by 엔젤로그 (8)
 

지난 23일, 중국 슈퍼리그에서 창춘 야타이는 아시아 최강팀으로 꼽히는 광저우와의 원정경기에서 3:1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날 승리의 일등공신인 창춘의 브라질 용병이 경기 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 한국에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오늘의 승리는 늘 제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전북팬들에게 바칩니다"

 

중국에서 활약하는 브라질 선수가 자신의 트위터에 한글로 쓴 글이라고 믿기지 않는 문구였고, 트위터의 주인공은 작년까지 전북의 닥공축구의 한 축을 담당한 에닝요입니다.

 

 

-에닝요 트위터 캡처-

 

 

트위터로 팬들과 잦은 소통을 하는 에닝요는 아직도 트위터 환경을 전북으로 꾸며 놓으며 전북과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전북 경기를 지켜본단 말과 한국으로 귀화해 국가대표로 뛰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의 친한파입니다. 중국에서도 한식집을 찾고, 휴가를 고향인 브라질이 아닌 한국으로 오는 등 비록 중국에서 뛰는 브라질 선수지만 전북 선수들에겐 여느 한국선수보다 더 한국인 다운 느낌이 있습니다.

 

이 경기에 앞서 2014 AFC 챔피언스리그 전북vs광저우 전에서 나온 전북 득점이 묵살되고, 반칙에서 시작된 광저우의 득점이 인정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어 전북은 1:3으로 패배를 당했습니다.

 

이 경기를 지켜보던 에닝요는 분노를 했고 마침 슈퍼리그에서 맞붙을 다음 상대가 광저우라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기에서는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보였습니다.

 

<-에닝요의 계속된 성공을 기원하시는 분 클릭.^^

 

한국축구를 경험한 외국인의 한국사랑은 에닝요 뿐만이 아닙니다.

 

 

 

-이미지 : 전남드래곤즈 홈페이지-

 

 

돌아온 스테보

 

한국에 와서 너무 반갑다는 말로 올 시즌 전남에 둥지를 튼 외국 선수입니다. 최근 j리그 쇼난 벨마레에서 전남으로 이적한 스테보는 마케도니아 국가대표 선수로 2007년 전북을 시작으로 포항과 수원에서 선수 생활하며 한국에 대한 정을 키워갔습니다. 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2013년 일본 쇼난 벨마레로 이적했지만 리그 스타일이 달라 적응에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6개월 만에 K리그 전남으로 이적한 스테보는 혹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에 호감 가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냔 의구심이 들 수 있지만 스테보가 일본으로 갔던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닌 수원과의 의리 때문입니다. 국내 프로팀에서도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을 수 있지만 다른 팀에 가서 수원을 상대하는 것이 미안하단 생각에 일본으로 갔습니다.

 

일본에서도 늘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고, 우연히 j리그 경기를 관전한 한국인이 스테보를 보고 반가워하자 "한국인이냐?"라는 한국말로 물어보고 무척 반가워하며 사인을 해주고, 한국을 좋아 하고 항상 그립다는 말을 해줬다는 경험담도 들립니다.

 

 

 

-이미지 출처 : 수원삼성그랑블루 홈페이지-

 

 

중국의 만리장성 리웨이펑

 

중국의 이천수라고 불릴 정도의 악동 선수이지만 또 다른 말로는 중국의 홍명보라 불릴 정도로 중국 수비를 책임지던 선수입니다. 중국의 이천수라고 했지만, 리웨이펑의 행동을 보면 이천수는 순둥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악동 중 악동이던 리웨이펑이지만 수원팬들에겐 최고의 순둥이고 최고로 사랑하는 외국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여러 사건에 휘말려 중국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그를 프로선수로 이끌어준 은사 차범근의 부름을 받고 수원에 왔습니다. 수원 유니폼을 입은 첫 경기 만에 퇴장을 당하며 역시 싸움닭이란 소릴 들으며 수원팬들에게 원성을 사는 듯 했지만, 이후 성숙한 모습과 특히 수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열성 팬으로 유명한 그랑블루 서포터석에서 오성홍기라 불리는 중국 국기와 "짜이오~!"라는 중국 응원구호가 들렸습니다.

 

수원에서 2년간 활동하며 텐진 테다로 이적한 리웨이펑은 중국에 돌아가서도 수원과 한국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2010 동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은 중국에 0:3 완패를 당하며 공한증이 깨어졌습니다. 이때 중국 기자들은 한국축구를 폄하하며 중국축구의 우위를 주장하는 글이 쏟아졌고, 이에 한국축구를 경험했던 리웨이펑은 한국을 감싸는 말로 한국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중국에서 축구 인생이 끝날 수 있던 그가 수원에서 환골탈태하여 다시 중국 국가대표로 복귀했고, 수원팬들에게 무한 사랑을 받았으며, 차범근이라는 은사가 있던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애정은 어쩌면 당연하단 생각이 들지만, 중국에 가서도 수시로 한국 기자들과 연락을 하고 중국에서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있으면 그것을 지적하며 한국홍보에 앞장섰습니다.

 

중국에서 활동하면서도 휴가를 받아 수원 빅버드를 방문하는 등 식지 않은 애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조국인 중국에서 축구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지만, 언젠가 은퇴하면 수원을 찾아 그랑블루와 함께 응원하며 경기를 관전하고 싶다고 말해 수원팬들은 감동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저 역시 리웨이펑을 굉장히 좋아하는 한 사람입니다.

 

 

 

-이미지 : FC서울 홈페이지-

 

 

FC서울을 강팀으로 만든 귀네슈

 

누군가 저에게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이 누군가 묻는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세뇰 귀네슈입니다. 2002년 히딩크의 열풍으로 대한민국은 히딩크에 열광했고, 그런 대한민국에 대한 히딩크의 사랑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고국인 네덜란드에 돌아가서도, 호주의 대표팀을 맡아서도 늘 한국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영표와 박지성을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줬고 특히 호주를 이끌고 출전한 2006 월드컵에선 일본전을 앞둔 히딩크는 "한국을 위해서 일본을 꺾는다"란 말을 남기며 네덜란드인과 동시에 명예한국인으로서 일본전에 임했습니다. (결과는 3:1로 호주의 대 역전승) 이후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매년 한국을 찾아 불우이웃 돕기와 히딩크 축구교실을 세우는 등 많은 우호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2년 또 다른 명장 터키의 세뇰 귀네슈는 한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2002월드컵 3/4위전 때 맞붙었던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으로 한국에 대한 짝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히딩크를 누르고 유럽 최고의 감독상을 받은 귀네슈는 터키를 이끌고 유로컵과 월드컵에서 성공과 터키리그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둔 잘 알려지지 않은 명장이었습니다.

 

히딩크가 2002년을 끝으로 한국 대표팀에서 사직하자 귀네슈는 공개적으로 한국대표팀에 관심이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감독 대행의 김호곤 감독 이후 외국 감독을 찾던 한국축구협회는 한국대표직을 희망하는 귀네슈가 아닌 움베르트 코엘류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좋지 못한 성적에 코엘류 카드가 실패했고 또 다른 외국인 감독을 찾을 때 역시나 귀네슈가 먼저 축구협회에 이력서를 접수하는 적극성을 보였지만 외국감독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이미지 : FC서울 홈페이지-

 

 

이때 귀네슈는 외국팀으로 성과를 보이고자 결심했고, 터키나 유럽 명문팀의 오퍼를 뿌리치고 과감히 FC서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은 귀네슈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보이며 일약 K리그 최강팀으로 이끌었습니다. 부상병동으로 불리는 극심한 불운 속에 베스트 11 선수 구성을 해본 경기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우승이 없어 무관에 그쳤지만, 귀네슈의 FC서울은 유럽 강호 팀에 못지않는 경기력과 재미있는 축구를 보이며 수원에 버금가는 최고의 인기팀 중 하나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한국축구에 대한 애정이 너무 깊은 귀네슈는 자신의 앞날보다는 한국축구와 한국을 위해 축구협회의 부조리를 지적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 덕분에 벌금과 함께 중징계를 받았지만, 서울팬들이 자발적 모금으로 벌금을 대신 내주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귀네슈는 눈물 흘리며 소중한 마음만 받고 팬들이 모금해준 돈은 어려운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했습니다.

 

이날 귀네슈는 2002년 터키대표팀의 월드컵 4강 때 보다 더 기쁘다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후 터키로 돌아간 귀네슈는 한국축구에 대한 애정이 더 해만 갔습니다. 어쩌다 한국이 유럽 원정이 있을 때면 귀네슈는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며 한국팀 경기장을 찾아 한국선수를 격려해줬습니다. 한국과 터키는 혈맹국 관계로 양국 국방부의 정기적 축구 친선전이 있었고, 한국 국방부는 축구팀인 상주상무가 터키원정을 갔습니다.

 

이때 귀네슈는 자신이 맡은 프로팀의 일에도 바쁜데 경기장을 찾아 상주상무 선수들을 격려해줬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럽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도 하나하나 체크해줬고 특히 어려운 시절을 보낸 기성용에겐 원하면 자신의 팀에서 함께하자는 무한 신뢰와 격려를 보였습니다.

 

에닝요의 트위터를 보고 막 생각났던 한국축구를 경험한 외국인의 한국 사랑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글을 쓰면 쓸수록 한국사랑을 표현한 선수들이 늘어만 가서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만 줄입니다.

 

태국의 피아퐁, 첫 귀화 선수인 신의손(이젠 한국인.ㅋ), 서울의 코치로 변신한 아디, 데얀민국의 데얀, 수원의 영원한 9번 에두 등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 축구인이 너무나 많은 것 같아 글을 쓰면서도 손이 가볍고 기쁜 마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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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iger 2014.06.20 2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았습니다. 몰랐던 내용들이라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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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타 2010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모인 관중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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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만6천명이 넘는 구름관중이 소나타 2010 K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을 찾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FC서울은 연고지를 옮긴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안양에서 일방적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서울은 이후 구단이 투자를 늘리며 우수한 선수들을 영입하고 공격적 마케팅으로 많은 관중들을 상암으로 불러모았습니다. 안양에 있을때도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상암으로 둥지를 턴 이후 k리그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기 시작했고, 지휘봉을 잡은 유럽 최고의 감독중 한분인 터키의 귀네슈 감독은 재미있는 축구와 이청용, 기성용, 이승렬과 같은 어린선수를 키워내고,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을 한국축구와 선수개인을 위해 유럽으로 이적에 동의 하는등 한국축구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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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챔피언 결정전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투르크의 명장 "세뇰 귀네슈" 입니다.

저는 2002년 이후 터키를 굉장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제 블로그엔 터키에 대한 우호적인 이야기가 많고, 수원의 팬인 제가 최근 수원의 라이벌이 된, 더군다나 패륜짓을 저지른 서울에 귀네슈 감독이 있다는 이유로 제 2의 응원구단이 되었습니다.

귀네슈 감독은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과의 3/4위전이 끝나고 태극기를 흔들며 그라운드를 누비고, 몇년 뒤 자신은 한국 대표팀 감독을 하고 싶다는 공식적인 러브콜을 보내는 등 많은 자리에서 한국사랑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귀네슈감독은 월드컵 3위, 유로컵 8강과 함께 터키리그의 수많은 우승컵등을 바탕으로 또다른 친한파 유럽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을 제치고 2002년 유럽 최고의 감독상을 받은 능력있는 감독입니다.

이런 세계적 명장이 당시 독이든 성배로 매력적이지만 기피대상이 된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기뻤습니다.(하지만 한국 축구협회에서는 영어권이 아니며, 해외팀 지도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귀네슈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기진 않았습니다.)

한국 축구협회는 2차례나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싶다는 귀네슈 감독을 거부한 가장 큰 이유가 외국팀을 지도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들었을까? 귀네슈 감독은 과감히 K리그를 선택해서 자신의 능력을 직접 보여주리라 결심을 했고 그렇게 FC서울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K리그 사상 최고의 커리어를 가진 명장이라는 이유로 많은 팬들은 서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귀네슈감독은 유럽축구를 연상시키는 짜임세 있는 경기를 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탠다면 당시 인기 있던 EPL의 맨유경기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의 경기력이었다고 생각 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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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것 같았던 귀네슈호의 영광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베스트 11 선수들 중 필드요원 1명을 제외한 전원이 부상을 당하며 부상 선수로 선수진을 꾸리는 것이 베스트 11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고, 종전에 보였던 맨유급 경기력은 사라졌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귀네슈는 과감히 유망주들을 대거 기용하며 어린선수 육성에 힘을 쏟았는데 이때 나온 선수가 이청용, 기성용, 이승렬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박주영 선수도 성공적으로 K리그에 안착하고 부상과 상대선수의 집중 견제에 슬럼프를 겪었지만 이미 팀 핵심 공격수가 된 박주영 선수에게 프랑스에서 러브콜이 오게 됩니다. 박주영을 잡기 위해 엘지는 고려대에 거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한국축구와 박주영 선수 개인을 위해서 귀네슈 감독은 순순히 이적에 동의를 해줬습니다.

귀네슈 감독은 터키에 있을때 부터 유망주를 성장시키는 것에는 탁월한 능력이 있던 감독으로 자신이 프로팀에서 키웠던 유망주들을 데리고 대표팀을 꾸렸는데 그때 나온 성과가 월드컵과 유로컵의 성공이었습니다.(귀네슈 지휘를 받은 터키 유망주들은 빅리그 이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터키에서의 유망주를 성장시키는 능력은 K리그에도 고스란히 볼 수 있었습니다. 박주영 선수는 모나코로 이적하자 마자 팀 최고의 공격수가 되었고, 지금은 EPL 최고의 명문구단에서 희망하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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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이 떠난 이후 더욱 중책을 맡게된 이청용과 기성용선수에게도 유럽에서 러브콜이 왔습니다. 우승을 위해서 꼭 필요한 선수지만 이번에도 귀네슈는 한국축구와 선수 개인을 위해서 이적에 동의를 해줬습니다.

이청용 선수는 세계최고의 리그에서도 최고의 신인선수중 한명으로 선정될 정도로 EPL에서 쉽게 적응을 했고, 다소 늦긴 했지만 기성용 선수 역시도 지금은 스코틀랜드 최고의 명문팀 셀틱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셀틱 입단초기 팀에 적응하지 못한 기성용 선수를 위해서 귀네슈는 터키의 명문 트라브존스포르 지휘봉을 잡은 이후 "기성용을 원한다" 라는 공식 반응과 함께 제자에 대한 공식 지지를 보여줬고, 이후 월드컵이 끝나고 셀틱에서 꼭 필요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비록 귀네슈는 필요에 의해서 러브콜을 보냈지만 당시 러브콜은 기성용 선수에게 상당한 응원의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선수 육성뿐 아니라 K리그에서도 귀네슈는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학연과 지연이 강한 한국축구에서 이런 인맥과 전혀 무관한 귀네슈는 거침없는 독설로 한국 축구를 비판을 했습니다. 비난이 아닌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한 필요한 비판이었는데 귀네슈의 비판은 축구협회에 있어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고 연맹은 강한 징계를 매겼습니다.



▲ 귀네슈 모금행사에 감동한 귀네슈 감독이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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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축구팬들은 이런 귀네슈에 강한 지지를 보냈고, 징계를 받을때 나온 거액의 벌금을 팬들이 자발적인 성금 모금으로 벌금을 대신 내주는 감동을 연출했습니다. 당시 귀네슈 모금행사는 수많은 팬들이 참여하여 조기에 목표액을 달성했다고합니다.
(귀네슈는 당시 받은 성금을 자신의 벌금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불우이웃 돕기와 같은 성금으로 사용했습니다.)

한국 축구협회에 큰 실망을 했던 귀네슈는 팬들의 사랑에 감동을 하며 당시의 상황을 가르켜 "자신의 일생에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다. 2002년 월드컵 3위를 차지했을 때 보다 더 감동적이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축구감독에 있어서 히딩크라는 국가대표 감독이 아닌 K리그 감독중 이렇게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감독이 또 있었을까요?



<- 공감하시는 분은 클릭해주세요~^^


아쉽게 서울과의 3년 계약이 끝나고 팬들의 남아달라는 부탁에도 더이상의 계약연장은 없었고 친정팀인 터키 트라브존스포르에 돌아갔습니다. 한국대표팀의 핵심이 된 이청용, 기성용을 성장시켰고, 박주영의 프랑스 정착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으며, 축구연맹에 꼭 필요한 충고를 통해 축구팬들의 지지를 이끌었으며, 터키에 한국축구를 알리는 역활을 했던 귀세슈 감독은 아쉽지만 K리그에서 어떠한 우승컵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귀네슈는 K리그에서 늘 만년 2인자였습니다. 애초에 FC서울 전력이 우승후보는 아니었고, 부상병동이라는 변명을 했었지만 귀네슈가 떠난 직후 바로 서울이 우승을 차지하니 뭔가 씁쓸하면서 지금처럼 큰 부상이 없이 리그를 마감하고, 평균 3만이 넘는 구름관중의 성원이 있었으면 귀네슈감독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나네요.

비난은 자신이 받고 영광은 한국축구에 양보했던 귀네슈 감독님, 비록 대한민국 출신의 우수한 감독이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좋은 성적을 남기길 원하지만 최근 연평도 사건때 한국에 큰 감동을 줬던 터키인의 댓글에서 보듯 터키는 평범한 외국이 아닌 형제의 나라이며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했던 귀네슈 감독은 그토록 원했던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2002년 영광을 다시 한번 재연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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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야기캐는광부 2010.12.06 2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네슈감독을 다시 추억하게 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ㅜㅜ갑자기 그가 보고 싶네요. 귀네슈를 위한 모금도 너무 감동적입니다.

  2. 딩개 2011.01.04 2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으면서 입네슈니 혀네슈니 하는 싸월 새끼들이 존내 우습게 보인다. 명장이거든 ?? 부정못하거든 ???ㅋㅋ




최근 한국의 젊은 축구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해서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 선수가 축구천재 박주영 선수입니다.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빛나는 AS모나코에 이적하며 팀 적응기간도 없이 단숨에 팀의 주력 선수를 넘어서 핵심 선수가 되었습니다.

축구를 배우러 간다던 박주영은 이후 국내 인터넷에선 축구를 배우러 간게 아니라 축구를 가르치러 갔다며 "박선생" 이란 별명이 붙여 졌죠

당시 감독 경질론에 시달리던 모나코는 그나마 감독이 유일하게 잘 했던 행동이 박주영 영입이란 말이 나돌 정도였고 모나코의 모든 공격은 철저히 박주영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당시 모나코엔 아주 많은 공격수가 있었는데 주력 공격수는 박주영 뿐이었습니다.

모나코의 공격수는 누가 박주영과 잘 맞는지 실험이 계속 되었고 모나코 공격진들은 공식 인터뷰에서 자신이 박주영과 잘 맞다며 공개적인 박주영과는 자신이 어울린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선수까지 등장했습니다.






박주영에 이어 두번째 선수는 이청용입니다.

박주영과 마찬가지로 처음엔 적응 못할까봐 많이 걱정 했죠.

K리그보다 훨씬 빠른템포와 강력한 압박, 과연 어린 이청용 선수가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졌습니다.

한때는 아시아축구의 대표 아이콘이었던 나카타 히테토시 역시 후보로 있다가 퇴출당했던 볼턴으로 이적을 했습니다.





 볼턴의 나카타 히테토시


이적후 바로 선발로 뛰었던 박주영과 달리 EPL 적응기간을 준다면서 이적후 얼마간 시간이 흐른뒤 후반 교체로 이청용을 투입 시켰고 현현지 팬들과언론은 연일 이청용의 찬사에 입이 마를 날이 없었죠.


볼턴에 없는 테크니션이다.!  볼턴의 차세대 에이스다.! 이런 찬사가 이어지며 붙박이 주전으로 입지를 굳혀 갑니다.


모나코와 마찬가지로 이적후 볼턴역시 감독의 경질론이 거셌습니다.


얼마전 감독이 교체되긴 했지만 당시 볼턴팬들은 모나코에서 그랬듯 감독 평가를 하면서 가장 잘 했던 일은 " 이청용 영입" 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 이미 계약을 하며 최근 환상적인 데뷔전을 가진 기성용 선수가 셀틱에서 활약을 합니다.

박주영, 이청용과 달리 보다 강한 리그에서 뛰길 원했던 팬들의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셀틱에서 만점 데뷔전을 치뤘습니다.

아직 이적 초반이라 정확한 평가를 하긴 힘들지만 분명 아직까진 기성용역시 성공임은 분명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셀틱 역시 감독 경질설에 시달린다고 하더군요..)









내노라하는 한국유망주들이 그토록 두드렸던 유럽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1년에 한두번씩 괴물이 나타났다던 일본에서 역시 유럽진출은 늘 실패로 끝났죠...
(괴물 =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는 초인의 능력자를 가졌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대단한 능력자라는 일본 유망주 스포츠 스타들에게 한동안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한국에서 3선수가 연속으로 팀의 에이스로 거듭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단순히 우연일까요.??


3선수를 보면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적팀의 감독 이적설.?? 이런거 말구요.^^







바로 모두 FC서울 소속선수였다는 것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세뇰귀네슈 감독의 지휘를 받았던 선수라는 것입니다.



이 글의 제목인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의 유럽 정착.. 그 이유는.??" 여기의 답은 바로 유망주를 성장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감독을 만났기 때문이다.!! 라고 말 하고 싶습니다.



전 귀네슈 감독의 열렬한 팬입니다.





2002년 3~4위전에서 한국 국기를 휘감고 대구구장을 뛸때부터 호감을 가졌는데.... 유럽 최고의 감독상을 받은 그분께서 공개적으로 한국 국가대표팀을 희망한다는 발언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외국 감독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대표 감독에선 탈락을 했죠.

이때 귀네슈감독은 그럼 K리그에서 해외감독과 한국축구를 익혀서 다시 한국 국대에 도전하겠다며 FC서울의 지휘봉을 잡게 됩니다.

이후 FC서울은 EPL축구를 보는듯한 짜임세와 골폭풍,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환상적인 패싱력과 멋진 골들로 FC서울의 돌풍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축구감독 사상 처음 본다는 주전선수 줄 부상에 FC서울 돌풍은 그만 무너지게 되죠..
(당시 베스트맴버 11명중 골키퍼 한명을 제외하면 필드요원 1명빼고 모두 부상이었습니다.  FC서울은 그때부터 극심한 하락세를 기록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귀네슈감독이 꺼내든 카드는 어린 유망주들의 기용이었고 그때부터 박주영 선수는 부진에서 회복하고 기성용과 이청용선수가 급성장을 합니다.


그리고 이승렬 선수역시 무섭게 성장을 하며 박주영에 이어 FC서울에서 또한번 신인왕을 탄생시켰죠.




이후 귀네슈 감독은 팀 주력으로 성장한 박주영이 모나코로 이적을 하고 싶다고 하자 아무 미련 없이... 성공을 기원하며 박주영을 보내줬습니다.

그리고 박주영은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잠잠해 질때쯤 기성용선수가 떠나고 싶다고 합니다.


귀네슈 감독은 한국축구를 위해서 보내준다고 했는데 어찌어찌 해서 1년 이후 셀틱으로 보낸다는 협약이 있을때쯤... 갑자기 이청용 선수가 볼턴으로 이적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귀네슈 감독은 기꺼이 보내줬습니다... 그리고 이청용 선수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시즌이 끝나고 기성용도 결국 셀틱으로 갔습니다... 대 성공을 거둘 조짐이 보입니다.



모든 아시아 국가에서 유럽으로 유망주를 보냈지만 거의 대부분이 실패하는 이시점에 귀네슈의 아이들은 3명이 유럽으로 진출해서 모두 믿을수 없는 대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귀네슈 감독의 유망주 육성능력이라고 밖에 설명 할수 없습니다.


비단 한국에서 뿐이 아닙니다.





터키 대표팀을 이끌고 유로 2000 8강과 2002년 월드컵 4강을 이룩할 당시 귀네슈는 자신이 있던 프로팀의 선수를  유럽 명문팀으로 이적을 시켰고 자신이 터키 대표팀을 이끌게 되자 그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로컵 8강과 월드컵 4강이란 성과를 올렸고 히딩크, 무링뇨, 퍼거슨과 경함한 유럽 최고의 감독상을 수상을 하게 됩니다.



차붐을 제외한 한국선수중 유럽에서 성공한 선수는 히딩크형과 함께한 이영표, 박지성 선수와 귀네슈 아이들인 박주영, 이청용입니다.(성공예감의 기성용선수.)

한국에서 성공한 유로파선수는 모두 히딩크와 귀네슈의 조련을 거친 선수들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귀네슈가 잘 해서 그 선수가 활약 하는거란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 선수 누구든 유럽에서 성공을 할 수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이청용, 기성용은 그냥 그런 평범한 유망주였습니다.(박주영이야 워낙에 특출났기에....ㅋ)


이런 평범한 유망주도 유럽을 평정하는 선수가 될 수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호날두, 메시, 카카와 같은 선수가 충분히 나올수 있습니다.

이제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그들을 최고의 선수로 이끌어줄 다른 여건도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혹 한두경기의 부진이 있더라도 어린 선수에게 무조껀적인 비난 보다 성장을 위한 과정이란 생각을 하며 격려를 해 줍시다.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의 성공이 모두 오로지 귀네슈 감독의 능력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성공하도록 이끌어준 귀네슈의 능력은 터키와 FC서울에서 볼때 확실히 인정해 줘야 될 것같습니다.

그리고 단 하나의 우승컵을 올리진 못했지만 귀네슈 감독의 축구스타일과 한국축구를 위한 귀네슈 감독의 행동들에 정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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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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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복돌이^^ 2010.01.21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재미나고 좋은글이네요...^^
    제가 생각하는 개인적인 느낌과 비슷하네요...

    귀네슈가 돌아간건 조금 아쉽지만...그래도....잘되겠죠...앞으로..ㅎㅎㅎ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엔젤로그 2010.01.21 2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재미있다고 해주시니 감사해요~~

      앞으로 더 좋은 유망주 많이 나와서 한국축구가 더욱 발전 했음 하네요..

      귀네슈 감독도 화이팅입니다.!!!

  2. 풀칠아비 2010.01.21 1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두다 귀네슈 감독 제자였다는 생각은 미쳐 못해봤네요.
    날카로운 분석이십니다.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 엔젤로그 2010.01.21 2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히딩크 감독과 함께한 이영표, 박지성도 그렇고 한국축구의 유럽 성공엔 유독 특정 감독과 연관 되는 특징을 한번 살펴 볼만 한 것같아요.

  3. ravenne 2010.01.21 1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청용,기성용이 귀네슈감독의 아래에서 큰 것은 사실이지만, 원래 특출났어요.. 20세이하 캐나다월드컵에서도 기성용,이청용선수는 특별했습니다

    • 엔젤로그 2010.01.21 2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박주영은 워낙 특출났지만 사실 기성용과 이청용은 여느 유망주랑 비교해서 그렇게 특출났다고는 생각되진 않습니다.

      이청용은 기성용에게 완전히 묻혔고 그들이 프로팀 1진에 뛸 기량까진 아니었습니다.(이청용과 기성용을 1진으로 올려서 선발출장 시킨 귀네슈감독의 결단에 당시에 충격이었습니다.)

      실제 청소년대표팀을 보면 특출난 유망주들이 꾸준히 나왔습니다

      이관우, 이천수, 이동국, 최태욱등... 매 대표팀 마다 당대 최고의 유망주들은 1~2선수씩 꼭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성공을 거둔 유망주는 FC서울의 3선수 뿐이었죠...

      이천수의 청대시절의 기량은 기성용과 이청용과 비교해선 진짜 월등했단 표현을 써도 될 정도입니다.(어느 대회에선가 결승전에서 이태리를 농락시켰던 기억도 나네요)

      그리고 이동국선수 역시 수십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진정한 스트라이커란 소릴 들었죠...

      고종수선수는... 어린 나이에 아시아 최고의 선수란 평가를 받으며 일본의 레전드.. 본문에 나온 나카타히테토시랑 직접 비교를 할 정도로 엄청난 선수였습니다.

      비단 한국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역시 축구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오쿠보와 같은 유망주들 엄청나게 나왔죠.

      하지만 유럽에서 성공한 유망주들은 FC서울의 3선수 뿐입니다.

      그것도 현지 적응도 없이 경기투입 즉시 결과를 냈죠


      박주영 선수역시 엄청난 유망주였지만 잘못하면 잊혀진 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았고 기성용, 이청용의 시대는 그 두선수가 주목을 받은게 아니라 팀의 완벽한 조직력이 주목을 받았지 기존처럼 압도적 유망주란 평가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박주영 이전 시대의 유망주들이 기성용과 이청용보단 훨씬 주목을 더 받고 당시 개개인 기량에선 더 높았다고 봅니다.

    • 이런이런.. 2010.01.31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ravenne/ 되로주고 말로받는군요..저런..
      가만히 있음 중간이라도 갑니다. 저처럼.

  4. 이청용 선수는 다른듯 2010.09.17 0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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