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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 한국/일본인 한국이야기

한국어 못하는 일본인과 통화했습니다

 


저는 외국어 전혀 못하는 평범한 한국 사람입니다. 영어는 중학교때 부터 포기를 했지만, 고등학교때 제2 외국어로 일본어 잠깐 배웠는데, 한국어와 어순이 같아서 영어보다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때 일본어 교양과목을 들었고, 이렇게 짧은 제 일본어 실력은 일본어가 뭔가는 아는 완전 초보 수준입니다.


이런 제가 어제 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일본인과 통화를 했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저는 2번의 일본 자유여행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일본에 익숙해졌고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넷 번역기를 통한 일본 블로그를 운영중입니다. (한국 블로그보다 일본 블로그를 먼저 했어요^^)

비록 인터넷 번역기지만 한국과 일본의 언어는 번역률이 매우 높고, 어느정도 기초 문법은 알고 있어서 번역 오타정도는 찾아낼 수 었습니다. 최근 일본은 젊은이들 사이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는데 한국인이 일본어로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것이 신기했는지 많은 일본인들이 제 블로그를 찾아주셨고 조금씩 한국과 관련된 질문을 하는 일본인들이 많아졌습니다.

질문은 주로 한국관광문의가 대부분인데 그러던 중 올 8월 말부터 젊은 일본여성으로 부터 한국관련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한국음식, 한국어, 한국관광지등으로 상당히 여러 분야에 대해서 질문했는데 알고 보니 9월 말부터 10월달까지 한달간 한국의 단기어학연수를 계획하고 있었고 젊은 여자 몸으로 혼자서 외국에 가려니 궁금한 것과 두려운 것이 많아서 저에게 질문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한달 가량 연락을 주고 받다가 일본친구는 드디어 한국에 왔습니다.





 <-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이나 일본친구 응원해주실 분은 클릭해주세요.^^




▲ 한국에 오기전 마지막 받은 메일입니다.
밤 늦게 죄송하지만 한국에서 사용할 번호를 알아냈기 때문에 제게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한국에 오기 직전 주고 받은 메시지에서는 상당히 오래 준비하고 손꼽아 기다리던 한국행이지만 막상 혼자 말도 안통하는 외국에 간다는 것에 두려워 하는 기색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거나 심심할때 연락 해달라고,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했습니다. 혼자 있는 외국에 자신을 알고 있는 현지인이 있다는 것만으로 상당히 든든해 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본친구는 드디어 한국에 왔습니다. 이제 일본친구와 인터넷 번역기로 대화는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할 말이 있으면 전화통화뿐입니다. 그때 갑자기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전 일본여행때 만난 누나가 있는데 그 누나는 일본어도 잘하고 지금 일본어를 공부중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일본친구에게 그 누나 번호도 알려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일본친구는 한국에 왔기 때문에 인터넷이 당분간 안되고 서로 연락할 방법은 오로지 전화통화 뿐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역시 일본 여행때 만났던, 지금은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 형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형 제가 불러주는 한국어를 일본어로 소리나는 대로 적어주세요~~"


이렇게 제가 하고 싶은 일본어를 소리나는 대로 쓰고, 일본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뚜~ 뚜~~



한국에 오면 받을꺼라는 임시폰에 신호가 가는 것으로 봐서 한국에 온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전화는 받지 않네요. 일단 2번이나 전화를 안받아서 부재중이 찍혔고, 제 번호도 알기 때문에 언젠간 일본친구가 먼저 전화 할꺼란 생각으로 더이상 전화는 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따르릉~~~



일본친구에 대한 생각을 잠시 잊고 있을때 전화가 왔습니다.

일본친구입니다.




▲ 일본어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종이입니다. 저는 이걸 읽기만 하면 됩니다.

전화를 받기전, 형이 불러줬던 한글로 쓴 일본어 종이를 서둘러 찾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아... 아니다... 모시모시? "




이렇게 어설픈 첫 인사로 한국어를 모르는 일본인과 일본어를 모르는 한국인의 첫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깡코쿠니 요쿠 쯔이딴데쓰까.? "
 


한국에 잘 도착했냐는 질문과 함께 종이에 적힌 일본어를 차근차근 읽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어를 할 수 있는 한국사람의 번호라면서 일본어 공부중인 누나의 번호를 알줄 차례입니다.

제가 다른건 몰라도 일본고유어를 표기하는 문자인 히라가나일본의 숫자에 한해서는 네가티브급임을 자처했기에 숫자로 된 휴대폰 번호를 불러주는 것은 저에겐 외국어도 아니었습니다.

010 - XXXX - XXXX 

제가 정말 자신있어 하는 일본어이기에 자신있게 불러주려고 했지만 갑자기 받은 일본인의 전화에 순간 머릿속이 하얀 백지장이 되어 버리네요.
 

0 = 제로, 1 = 이찌, 0 = 제로


이렇게 010을 설명하고 다음 숫자부터는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잠시 수화기에서 떨어져서



"이찌, 니, 산, 시, 고, 로꾸, 나나, 하찌, 쿠, 쥬"


이렇게 1에서 10까지 일본어를 한번 소리내어 외우고 다시 번호를 알려줍니다.

똑바로 알려줬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겠지만 저쪽에서 아리가또라는 말이 들리는 것으로 봐서 분명 잘 적었던 것같습니다. 이것으로 제가 전화하려는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이제 어색한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으면 일본인과 100점짜리 통화가 끝나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 사람끼리도 얼굴한번 안 본 남녀가 통화하면 얼마나 서먹한가요? 하지만 지금은 서로 말도 안통하는 한국남, 일본녀의 통화입니다. 이럴까봐 미리 간단한 인사 정도는 외워뒀습니다.



"방고항 다베마시다카? "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제가 처음 전화를 6시에 했고 그때에 맞춰서 일본어 공부중인 형에게 물어봤던 인사이기 때문에 아주 늦었지만 알고 있는 유일한 인사인 " 밥 먹었나요? " 라는 인사를 밤 10시에 했습니다.


늦은시간 밥먹었냐는 질문에 일본친구도 어색했는지, 잠시 주춤 하더니



" 하이.. 피자 !$#$%#$%$#% 데스 "



이렇게 피자를 먹었다는 말을 하는 것같았습니다.




▲제 대학교 성적표입니다. 가장 마지막 수업이 일본어였는데.. 옆에 보시면 A+ 표시가 선명하게 보이죠?
(사진 각도를 잘 찍어서 잘나온 성적표가 많이 보이네요.^^)


한국에 잘 왔냐는 환영인사도 했고, 일본어 공부하는 누나의 번호도 알려줬고, 이제 밥 먹었냐는 인사까지 끝난 이후 더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래뵈도 고등학교때 "수" 대학교때 교양일본어 A+ 학점을 받은 저로써는 뭔가 허전함을 이겨낼 애드립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다른 일본인 친구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찬스다~~~



"이마, 히토리 데스까? "
(이마 = 지금,  히토리 = 혼자,  데스까 = 입니까?)



옆에 일본어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일본 친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제가 알고 있는 일본어로 완벽한 문장을 만들수 있는 " 이마 히토리 데스까? " 란 말을 건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들리는 대답



" 이이에~~ "


아니라는 짧은 일본어와 함께 나온 조금은 길었던 일본어가 시작됩니다.



" 솰라솰라!$^$%&**!#$&(@$#^%^"

 
당연히 전혀 모르는 말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긴 일본어가 전혀 당황스럽지 않았습니다. 뜻을 몰라도 초등학교 수준의 국어만 배웠어도 알 수 있는 뻔한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누구랑 함께 있다는 말입니다.  이쪽에서 " 헬로~~" 하면.. 저쪽에선 "아인파인 땡큐 엔듀~? " 라는 대답이 나오는 것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저의 한마디


"도모다찌 데스까? " (친구 입니까?)



이 한마디를 하고 저는 너무 감격스러웠스니다. 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대화입니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애드립까지 마치고 이제 통화를 끊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하지만 전화 끊는 법은 배우지도 않았고 어떻게 끊어야 될지 애드립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는 일본어와 영어를 조합해서 몇가지 문장을 만들어 봤습니다.


전화 = 뎅와, 아니면 영어로 텔레폰

끊다 = 시마이.?(시마이는 끊다가 아니라 끝이라는 단어입니다)



결국 텔레폰 시마이라는 문장으로 이만 전화 끊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아노.. 이마... 텔레폰와 시마이 데스까?


"음.. 지금.. 전화를 끊습니까? " <- 저는 이런 의도로 이야기를 했고, 일본친구는 제가 일본어를 전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정도만 하면 알아들을꺼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쪽에서 제 말을 못 알아 듣는 반응이었습니다. 텔레폰 시마이라는 뜻이 전화 끊자는 말이 아닌듯 합니다. 서둘러 차선책으로 선택을 한 것이 일어가 안되면 콩글리쉬입니다.^^ 제가 사용하려는 콩글리쉬 문장은 우리학교 미국인 원어민 교사에게 실험해봤는데 통했던 방법입니다.(저는 학교에서 일 합니다.)




텔레폰 엔드.!!!



하지만 역시 의사소통이 안됩니다.

결국 저는 일본 아기 2살 수준도 안될 법한 일본어와 제 일어 실력과 비슷한 한국어 능력을 가진 일본친구는 서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했는데 순간 제가 알고 있는 일본어 단어가 나왔습니다. "아시따"  한국어로 내일이라는 단어입니다.

내일이면 오늘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함축된 의미라고 나름대로 해석을 했고, 그때부터 머릿속에선 일본어로 헤어질때 인사가 순식간에 막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있게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곤방와~~ "


그렇게 많이 떠오른 헤어질때 인삿말중 갑자기 곤방와라니.......

아침인사 : 오하요 고자이 마스,
 점심인사 : 곤니찌와
 저녁인사 : 곤방와


곤방와는 헤어질때 인사가 아니라 그냥 저녁때 하는 인사입니다.

제가 곤방와 하자 저쪽에서도 그냥 곤방와.....ㅠ



그리고 다시 정신 차리고 헤어질때 인삿말을 했습니다.



"자~네~~" (안녕~~)



그러자 일본 친구의 답변



"하이 사요~ 나라.!! "



사요나라가 나왔으면 드디어 끝난 겁니다.^^ 일본 친구와 통화하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제 상황은 너무 뻘쭘하고 긴장도 됐었는데 이제 전화를 끊는다는 안도감에 사요나라란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 그 친구에게 저도 인사를 해줬습니다.




" 곤 방 와 "..................ㅡㅡ?




이렇게 한국 환영인사와 일본어 공부중인 누나의 전화번호 전달, 일본어 애드립, 통화 종료까지의 모든 과정을 끝내고 통화는 끝났습니다. 약 8분간의 통화였지만 마치 80분 같았고, 여러 대화를 했지만 워낙 긴장해서 방금 끊은 대화내용도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한국에 있을 한달동안 원하는 공부 많이 하고 즐거운 추억을 안고 갔으면 좋겠네요.

이 친구와 처음 연락했던 과정이나 이후 한국생활, 일본에 돌아가서의 한국 이야기를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친구에게 이야기해서 소개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