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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관련글

박주영, 벵거의 최악의 영입? 이동국에게서 해법을 찾자

  

 

-박주영 관련 기사 캡처-

 

아침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는데 읽고 싶지 않은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박주영, 벵거 최악의 영입 리스트 2위"라는 기사였습니다. AS모나코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같은 프랑스리그의 강호 "릴"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더 큰 무대인 EPL 아스널로 이적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박주영의 축구인생에 큰 위기가 되었습니다.

 

이적 후 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은 박주영은 스페인으로 잠시 임대를 갔지만 큰 성과 없이 아스널로 복귀했습니다. 이후 여러 이적설에 휩싸이며 어려운 나날을 보내던 중 벵거 최악의 영입 선수 10명에 포함되는 불명예와 그 10명 중 유일한 생존자라는 부제목을 달아 아스널에서 더더욱 좁아진 박주영의 입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에 부임한 이후 부쩍 "소속팀에서 경기를 뛰는 선수" 들을 대표팀에 기용하겠다는 뜻을 보이며 소속팀의 이름이 아닌 꾸준히 경기를 뛰는 실전 감각이 대표팀 선별 조건으로 공식화되었습니다. 이후 부임한 홍명보 감독은 올림픽에서 동메달 획득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박주영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대표팀으로 뽑고 싶다는 뜻을 보였지만, 실전감각이 부족한 박주영에 대한 국내 전문가 및 축구팬들의 여론은 차가웠습니다.

 

청소년 대표시절 현란한 개인기와 침착함으로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모았고, FC서울에서도, 모나코에서도 그리고 대표팀에서도 중요할 때 한 건을 해주는 믿음직한 선수였던 박주영의 지금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생각을 들지만, 박주영에게 축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동국 잇단 굴욕 관련 기사 캡처-

 

들춰내면 속상한 일이지만 유럽 언론에서 최악의 영입과 관련된 기사를 낼 때 한국선수가 지목된 것은 박주영뿐만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한국선수의 유럽 진출기 흑역사엔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란 평가를 받던 라이언 킹 이동국 선수가 있습니다.

 

이동국 선수는 19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98프랑스월드컵에 출전하여 세계적인 선수들 앞에서도 전혀 위축됨 없는 당당한 플레이로 단숨에 대한민국 최고의 골잡이가 될 제목이란 기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하듯 포항스틸러스에서 시작한 프로생활에 신인왕을 차지하고 대표팀에서도 활약하는 등 바야흐로 이동국 시대를 열어갔으며 2000~2001시즌 독일의 브레멘으로 이적하며 거침없는 성공기를 써갔습니다.

 

이때까지의 이동국은 AS모나코에서 활약한 박주영의 성공기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그리고 각각 브레멘과 아스널이란 큰 무대로 이적하며 둘의 흑역사가 시작되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브레멘에 입단한 이동국은 7경기에 출전해 단 1개의 공격 포인트도 올리지 못하며 국내에 복귀했습니다. 당시 이동국의 플레이는 프로선수로 생각되지 않을 만큼 어색함이 묻어났고 독일 언론에선 "최악의 영입" 이란 혹평을 쏟아냈습니다. 이후 이동국은 대한민국 축구의 최고 성과로 일컫는 2002 월드컵 명단에도 탈락했습니다.

 

박주영의 지금 상황과 너무 유사한 과거를 살아온 이동국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군 복무를 위해 K리그로 돌아왔고 광주상무에서 활약으로 자신감을 찾아 다시 한 번 유럽진출을 꿈꾸게 됩니다. 이번엔 아픔이 있는 분데스리가가 아닌 이영표, 설기현, 박지성 선수가 활약 중인 세계 최고 리그 EPL의 미들스브러에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들스브러에서도 단 한 골도 넣지 못하며 브레멘에서와 같이 "최악의 영입"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전북현대 간판이 된 이동국, 전북현대 홈페이지 캡처-

 

지금 박주영과 비슷한 29살의 나이로 K리그로 복귀한 이동국 선수는 성남일화를 거쳐 전북현대의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이후 온갖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었던 이동국 선수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북 입단 첫해 무려 22골을 넣으며 K리그 득점왕 및 최우수상을 차지하고 전북의 창단 첫 우승의 기쁨도 누렸습니다. 그동안 중상위 팀으로 분류되던 전북은 최강희 감독의 "닥공"과 그 닥공을 받쳐줄 이동국 선수가 합작하여 단숨에 K리그 최고의 강팀으로 만들어 버렸고 지금까지도 계속된 성공기를 써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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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늘 최고의 활약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박주영, 지금이 자신의 축구인생에 있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힘든 역경을 딛고 더 크게 일어선 선수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에서 스트라이커 계보는 김주성->황선홍->이동국이었습니다. 이동국 선수는 94월드컵에서 황선홍선수가 받은 온갖 비난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2002년 폴란드전 득점으로 화려하게 은퇴한 그 길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이동국 선수 이후 스트라이커는 박주영이었고, 황선홍이나 이동국 선수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 축구선수 마지막을 화려하게 은퇴할 수 있는 길을 찾길 바랍니다.

 

박주영도 이동국처럼 K리그에 복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이 정말 잘 할수 있는 플레이가 뭔지? 그리고 자신과 가장 잘 맞는 리그가 어디인지를 냉철하게 판단하여야 합니다. 또한 이동국 선수는 그동안 "주워 먹기 달인", "움직임이 없다"라는 단점을 지적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미들스브러를 거쳐 K리그로 복귀한 이후 노장이 되었으면서 오히려 전보다 더 움직이고, 스스로 찬스도 만드는 모습을 보이는 등 피나는 노력을 거쳐 이룬 성과입니다.

 

 

 

 

박주영 선수도 자신의 단점이 뭔지를 파악하고 개선하며, 장점을 극대화 시켜 냉철하게 자신의 축구선수 후반기를 설계해야 할 것입니다.